매체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다

Jul 9th, 2008 | By blographers

미국 3대 공중파 네트워크 방송(NBC, CBS, ABC) 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발명인 전기와 전신을 이뤄낸 세 개 회사의 이름이 나온다. 토마스 에디슨의 GE, 웨스팅하우스 전기, 그리고 AT & T 이다. GE는 현재도 NBC를 소유하고 있고, 웨스팅하우스 전기는 CBS로 이름을 바꿨다. NBC에서 분리되어 나온 ABC는 월트 디즈니사에 의해 인수되었지만, 최근에는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가 최대 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전기와 전등, 통신,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발명했던 회사들이 텔레비전 방송 네트워크라는 가장 진화된 올드 미디어 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샬 맥루한에 따르면, 전등은 하나의 매체지만 그 자체로는 메시지가 없다. 전등에 모양을 붙여 네온사인을 만들때 전등이라는 매체는 메시지가 된다. 전등에 글이나 그림을 입혔다는 것은 전등이라는 새 매체에 ‘글’이나 ‘그림’이라는 ‘컨텐츠’(contents)를 입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매체는 언제나 새매체의 ‘컨텐츠’가 되는 것이다. 또 매체의 연대기적 관점에서 볼 때, 텔레비전은 ‘영화’라는 올드 미디어를 컨텐츠로 태생했다. 물론 고대 희랍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글쓰기’는 ‘말하기’와 ‘웅변’이라는 매체를 컨텐츠로 해서 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가장 오래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인 ‘말하기’역시 ‘생각’이라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nonverbal communication)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매체가 곧 메시지다’라는 말은 종종 맥루한이 원래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새로운 매체 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의미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맥루한이 의도한 바는 올드 미디어를 ‘컨텐츠’ 삼아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태동한 새매체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말하기’라는 매체가 지배적이었을 때는 광장에서 목청높이던 웅변가들의 주장과 그 웅변을 들은 청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들이 메시지의 전부였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 기존 매체는 늘 새로운 매체에 대해 불평하고 견제하고 심지어 폄하했다. 1850년대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있던 은행가 제임스 로스차일드는 ‘전신이 설치된 것은 큰 수치이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전신으로 인해 누구나 뉴스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로스차일드의 은행업은 말을 타고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들을 이용해 유럽내 주요 교역장소에서 일어나는 비즈니스와 교역에 관한 뉴스를 통제함으로써 이윤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형성된 새로운 매체는 인간들이 관계하고 행동하는 규모와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는다. 새로운 매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가능성을 열어놓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맥루한이 예로 든 것처럼 전등이라는 매체가 뇌수술에 사용되건 야구장의 야간경기를 밝히는데 사용되는가는 매체 생태학에서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새로운 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관계망은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했을 때, 그 메시지라는 것은 새로운 매체가 열어놓은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토록 자주 인용되는 맥루한의 그 유명한 선언은 정확히는 “미디어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다’(the medium is socially the message)”라는 것이 ‘미디어 이해하기’의 비평판을 편집한 테렌스 고든의 해석이다.

1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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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잘 읽었습니다. ^^ 새로운 매체 자체가 메시지라는 발상이 대부분의 새로운 시도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혹은 의도치 않았던 미디엄들을 이용하여 미디어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의미있는 시도에 숨겨진 의미를 ‘새로운 매체 = 미디어’ 라고 표현해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그 시도가 여러 사람에게 의미있어지게 되면 social media 의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고요)

  2. “내 생각에 현재의 인식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가 아닙니다. 깊이의 상실입니다. 피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Noam Chomsky

    갑자기 요즘 정리하는 몇 가지 글 들 중에 촘스키의 이 말이 가장 적합한 댓글 같아요.

  3. 놀 (knol), 구글, 그리고 미디어 기업…

    우리나라 포털처럼 구글 역시 미디어 기업으로 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미디어 기업은 컨텐츠 제공업체로서의 구글을 말한다. 이런 정의대로 ….

  4. 음.. 맥루헌의 미디어의 이해를 제대로 안읽으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롭고 오래되었고의 구분을 떠나, “메체 자체가 곧 메세지” 가 맞습니다.

  5. 좀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단지 오래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세력이,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한 집단과
    충돌한다는건, 정말 초보적인 이해에 불과 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맥루헌은 미디어의 “내용”이 아닌 속성을 기반으로 그 많은 이야기들을 진행했습니다.
    그 속성이 인간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그 누구도 정의 내릴순 없구요.
    즉, 올드미디어의 세력이, 뉴미디어의 세력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는것이죠.
    예를 든다면, 위에서 말한 예의 바로 아래에 나와있는, IBM이 되겠죠.

    비록 타인의 주장을 인용하신글이긴 하나, 책을 직접 읽으면 너무나도 뻔한것 인데도 불구하고,
    비판적인 내용하나 없는걸 보니 우려를 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6. 리카르도 /

    글쓴이를 대신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 뭣하지만, 20여년 저널리즘을 전공하신 분에게 이런 오만한 훈계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제가 저널리즘에 대해선 가장 많이 배우고, 또 강한 비전과 새로운 인식의 관점을 배우는 분의 글입니다. 그 훈계가 누구에게 향해야 하는지는 한번쯤 숙고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저야말로 우려를 금할 수 없군요.

  7. 현직 대통령 전직 대통령까지 발바닥 때만도 여기지 않는 세태에, 20여년 저널이즘이 뭐 그기 대수일까 싶네요. ㅋㅋ
    아, 이 글 별다른 의미 없습니다. 리카르도님을 치는 민노씨의 말이 좀 거시기해서 해본 말일 뿐입니다. 인터넷에서 흔하디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내 블록서는 하루에도 몇 십번은 좋이 듣기도 하는 말인데, 거기에 발끈하고, 게다가 발끈하는 이유가.. 솔직히 저거 좀 안습이잖어요~ ;-P

    근디, 이건 뭐댜? 친절하게 분/초까지 찍어주네.

  8.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다름이 아니라 제가 알기로는
    새로운 매체의 출현이 곧 새로운 메세지의 출현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 …
    즉, 새로운 매체의 출현은 새로운 메세지의 출현이 아닌 메세지를 전달하고 메세지를 인식하는 방법의 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매체의 출현은 컨텐츠의 변화보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이다,
    라고 알고있는데 ..
    그것이 이 밑에있는 내용과 같은 내용인지 궁금해서 지나가다 글남겨봅니다 ..
    [매체가 곧 메시지다’라는 말은 종종 맥루한이 원래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새로운 매체 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의미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맥루한이 의도한 바는 올드 미디어를 ‘컨텐츠’ 삼아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태동한 새매체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요새 독감이 유행이라는거 같던데 ..감기 조심하세요 ..^^

  9. 리카르도님, “새롭고 오래되었고의 구분을 떠나, “메체 자체가 곧 메세지” 가 맞습니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윗글에 대한 반응으로는 상당히 어색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맞고 틀림’으로 말씀하실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개인적인 판단입니다만 이런 반응은 윗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내려진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설픈’ 판단(죄송합니다. 단지 위의 판단으로만 보자면 그렇습니다.)에 기반해서 다음과 같이 ‘도덕’적인 훈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씀까지 더하신 것은 지나친 ‘무례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맥루헌의 미디어의 이해를 제대로 안읽으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롭고 오래되었고의 구분을 떠나, “메체 자체가 곧 메세지” 가 맞습니다.”

    “비록 타인의 주장을 인용하신글이긴 하나, 책을 직접 읽으면 너무나도 뻔한것 인데도 불구하고,
    비판적인 내용하나 없는걸 보니 우려를 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무례함’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 따라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어떤 ‘선’을 넘어선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이해한 바로는 글쓴이가 얘기하려고 한 것 (특히 다음부분)은 맥루한의 말이 맥루한이 말했던 ‘의미의 맥락’들이 제거된 채 사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체가 곧 메시지다’라는 말은 종종 맥루한이 원래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새로운 매체 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의미로 이해되곤 한다. ”

    그리고 이에 대해서 저는 민노씨의 지적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고요. http://minoci.net/828

    그냥 맥루한에 나름 관심이 있었던 부족한 한 개인의 생각을 얘기해서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읽은 지 오래된 책이었고, 윗글에서 다룬 테렌스 고든의 해석에 대해서는 관련 지식이 없었고요. 저도 책을 좀더 꼼꼼히 다시 읽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10. 누에님 비판 감사합니다.

    민노씨를 이해할수 없는게, 이렇게 이 자리에서 비판하면 될것을
    마치 자신이 블로그계 “골목대장”인냥 떠벌이고 다닌다는 점이었습니다.
    더 웃긴건, 그렇게 대단한 척하시는 민노씨님은 정작 아는게 전혀 없었구요.
    이후에 아는척 하면서 또 글을 쓰셨던데(링크해주신 http://minoci.net/828 ), 자신의 무지를 그대로 보여주시더군요..
    더군다나 위에서20년전 저널리즘 전공한사람에게 어쩌고 저쩌고 하시는 모습까지..

    제 댓글에 대한 비판하신것에 대해서는, 윗 글의 세번째 문단을 잘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님의 댓글 위에 있는 댓글도 읽어보시구요.
    그리고 다시 아래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세번째 문단의 글입니다.

    “하지만 맥루한이 의도한 바는 올드 미디어를 ‘컨텐츠’ 삼아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태동한 새매체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말하기’라는 매체가 지배적이었을 때는 광장에서 목청높이던 웅변가들의 주장과 그 웅변을 들은 청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들이 메시지의 전부였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 기존 매체는 늘 새로운 매체에 대해 불평하고 견제하고 심지어 폄하했다. 1850년대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있던 은행가 제임스 로스차일드는 ‘전신이 설치된 것은 큰 수치이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전신으로 인해 누구나 뉴스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로스차일드의 은행업은 말을 타고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들을 이용해 유럽내 주요 교역장소에서 일어나는 비즈니스와 교역에 관한 뉴스를 통제함으로써 이윤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문제제기한 것은, 그리 어려운게 아닙니다.
    즉, 새로운 매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과거의 그것과 항상 대립되는 것인냥 글을 적어 놨다는것.
    그러니까 뒷문단에서는 “그 새로운 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관계망은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한 것” 이라고 했지만,
    글의 유일한 논거가 되는 세번째 문단의 예시에서, 마치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지배하는 세력들의 대립으로만 묘사했다는것이죠.

    어때요? 생각보다 쉽죠? :)

  11.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 기존 매체는 늘 새로운 매체에 대해 불평하고 견제하고 심지어 폄하했다. ”

    이 문장에서 ‘늘’이란 수식어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이 글에 대한 리카르도님의 판단이 지나치게 일방적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노씨는 저보다 훨씬 정중하고 친절하게 반응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민노씨의 지적이 적절했다고 생각하고요. http://minoci.net/828 리카르도님의 방금 이 댓글에도 담긴 ‘무례함’(‘무지’라는 기준을 들이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는 한번쯤 깊이 돌이켜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2. [...] 매체는 사회적으로 메세지다 – blographers [...]

  13. 누에님께 드리고 싶은 말은, 저는 민노씨님이 아닌, 이글을 쓴사람에게 그메세지를 던졌다는데 있습니다.
    민노씨 라는 사람이 제게 화를 낼 이유는 전혀 없었다는걸 다시한번 알려드립니다.

    그래서 제가 “민노씨 골목대장론”을 던졌던 것이구요 :)

  14. 리카르도/
    “따라서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했을 때, 그 메시지라는 것은 새로운 매체가 열어놓은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라는 대목이 이 글의 핵심이고
    그 대목에 관해서는 이미 맥루한이 캐나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주해를 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blographic.net/wp-content/uploads/2009/cool_vs_hot%20medium.mp3

  15. 리카르도님

    누군가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 자신의 판단의 설익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행착오는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성찰해낼 수 있다면요.

    맥루한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트랙백으로 기대해 봅니다.

  16. 아거/
    제말은 그 사회 변화가 마치 오래된것과 새로운것의 대립으로 비춰져서는 안된다는겁니다.
    위에 글에서 예는 매우 편파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강한 의문을 던진거랍니다.
    굳이 인터뷰를 볼필요도 없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파악하실수 있으리라 봅니다.

    누에 / 글쎄요. 저는 누구를 제 3자의 입장에서 평가한적 없습니다. 그저 제 생각을 말한것 일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가 댓글을 쓴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함이 아닙니다. 그런 의도 였다면 더욱더 쉽고 사람들이 이해하기 편한 글을 적었겠죠.

    오히려 저를 그렇게 “평가”하시진 말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이런 자리에서 제게 “재밋는” 뭔가를 바라신다는게 좀 불쾌하네요.
    제게 남들 좋아라 하는 재밋는 이야기 따위를 적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박학다식하고 아는척 많이 하시는 민노씨님께 그런글을 바라시는게 좋을것 같네요.

  17. [...] 시대를 초월해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 비평학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바로 그가 던진 놀라운 insight 때문이다. 그는 ‘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했다. 그가 ‘미디엄은 메시지다’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새로운 매체는 새로운 메시지가 태동할 환경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형성된 새로운 매체는 인간들이 관계하고 행동하는 규모와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는다. 새로운 매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가능성을 열어놓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맥루한이 예로 든 것처럼 전등이라는 매체가 뇌수술에 사용되건 야구장의 야간경기를 밝히는데 사용되는가는 매체 생태학에서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새로운 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관계망은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매체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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