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다
미국 3대 공중파 네트워크 방송(NBC, CBS, ABC) 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발명인 전기와 전신을 이뤄낸 세 개 회사의 이름이 나온다. 토마스 에디슨의 GE, 웨스팅하우스 전기, 그리고 AT & T 이다. GE는 현재도 NBC를 소유하고 있고, 웨스팅하우스 전기는 CBS로 이름을 바꿨다. NBC에서 분리되어 나온 ABC는 월트 디즈니사에 의해 인수되었지만, 최근에는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가 최대 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전기와 전등, 통신,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발명했던 회사들이 텔레비전 방송 네트워크라는 가장 진화된 올드 미디어 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샬 맥루한에 따르면, 전등은 하나의 매체지만 그 자체로는 메시지가 없다. 전등에 모양을 붙여 네온사인을 만들때 전등이라는 매체는 메시지가 된다. 전등에 글이나 그림을 입혔다는 것은 전등이라는 새 매체에 ‘글’이나 ‘그림’이라는 ‘컨텐츠’(contents)를 입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매체는 언제나 새매체의 ‘컨텐츠’가 되는 것이다. 또 매체의 연대기적 관점에서 볼 때, 텔레비전은 ‘영화’라는 올드 미디어를 컨텐츠로 태생했다. 물론 고대 희랍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글쓰기’는 ‘말하기’와 ‘웅변’이라는 매체를 컨텐츠로 해서 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가장 오래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인 ‘말하기’역시 ‘생각’이라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nonverbal communication)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매체가 곧 메시지다’라는 말은 종종 맥루한이 원래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새로운 매체 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의미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맥루한이 의도한 바는 올드 미디어를 ‘컨텐츠’ 삼아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태동한 새매체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말하기’라는 매체가 지배적이었을 때는 광장에서 목청높이던 웅변가들의 주장과 그 웅변을 들은 청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들이 메시지의 전부였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 기존 매체는 늘 새로운 매체에 대해 불평하고 견제하고 심지어 폄하했다. 1850년대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있던 은행가 제임스 로스차일드는 ‘전신이 설치된 것은 큰 수치이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전신으로 인해 누구나 뉴스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로스차일드의 은행업은 말을 타고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들을 이용해 유럽내 주요 교역장소에서 일어나는 비즈니스와 교역에 관한 뉴스를 통제함으로써 이윤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형성된 새로운 매체는 인간들이 관계하고 행동하는 규모와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는다. 새로운 매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가능성을 열어놓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맥루한이 예로 든 것처럼 전등이라는 매체가 뇌수술에 사용되건 야구장의 야간경기를 밝히는데 사용되는가는 매체 생태학에서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새로운 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관계망은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했을 때, 그 메시지라는 것은 새로운 매체가 열어놓은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토록 자주 인용되는 맥루한의 그 유명한 선언은 정확히는 “미디어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다’(the medium is socially the message)”라는 것이 ‘미디어 이해하기’의 비평판을 편집한 테렌스 고든의 해석이다.

글 잘 읽었습니다. ^^ 새로운 매체 자체가 메시지라는 발상이 대부분의 새로운 시도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혹은 의도치 않았던 미디엄들을 이용하여 미디어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의미있는 시도에 숨겨진 의미를 ‘새로운 매체 = 미디어’ 라고 표현해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그 시도가 여러 사람에게 의미있어지게 되면 social media 의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고요)
“내 생각에 현재의 인식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가 아닙니다. 깊이의 상실입니다. 피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Noam Chomsky
갑자기 요즘 정리하는 몇 가지 글 들 중에 촘스키의 이 말이 가장 적합한 댓글 같아요.
놀 (knol), 구글, 그리고 미디어 기업…
우리나라 포털처럼 구글 역시 미디어 기업으로 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미디어 기업은 컨텐츠 제공업체로서의 구글을 말한다. 이런 정의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