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대전,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Jul 9th, 2008 | By

미국 언론인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 매년 수많은 저널리스트들과 작가들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저서가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상을 제정한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조셉 퓰리처의 언론관은 사실 요즘 말하는 훌륭한 언론인상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1883년 퓰리처는 뉴욕의 조간신문 [뉴욕 월드]를 인수한 뒤 전단 제목이나 컬러 인쇄 등 (요즘 스포츠신문처럼) 화려한 편집기법을 사용하고 정치인의 부패.비리 고발기사, 선정적 보도를 늘리며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화, 스포츠 기사, 패션기사 등을 선보이는 등의 방법으로 부수를 늘려간다. 마침 1895년 광산재벌 겸 연방상원의원을 지낸 조지 허스트의 외아들 윌리엄 허스트가 [뉴욕 모닝 저널]을 인수하고 마찬가지의 선정성 경쟁을 벌이면서 두 신문 사이의 경쟁은 ‘옐로 저널리즘’이란 용어까지 만들어 낸다. ([월드]지에 인기리에 연재됐던 컬러 만화 [옐로키드]의 작가 리처드 F 아웃콜트를 [저널]지가 스카우트한 데서 붙은 명칭)

이 사건은 그러나 19세기 지지 정당의 찌라시 노릇을 했던 당파 저널리즘에서 공정한 보도원칙을 중요시하는 20세기 현대 저널리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신문의 고객을 특정 정파 지지자에서 대중으로 넓히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신문의 당파성이 건재하긴 했지만, 신문회사도 일종의 기업이다보니 경영전략 차원에서 보다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됐고 20세기로 넘어가면서부터는 극단적 당파성을 제거하는 전략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다.

결국 사설이나 칼럼 등 오피니언 면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면서도 일반 보도지면에서는 이를 배제하는 현대적 저널리즘이 확립된 것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21세기 한국 언론 상황을 들여다 보면 마치 19세기 말 미국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미디어 간 전쟁이 너무나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고, 전선도 [월드]대 [저널]의 단순구도를 한층 벗어나 ‘조중동’ 대 ‘한겨레경향’, ‘올드미디어’ 대 ‘뉴미디어’, ‘신문’ 대 ‘방송’ 등 여러 구도로 형성됐다. 사설이나 칼럼과 구분이 안 되는 신문 1면, 입맛대로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고 연출 사진 논란에 상대방에 대한 낯뜨거운 비난까지, 지독한 전투 속에 현대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신뢰’라는 단어는 완전히 실종됐다.

똑같은 촛불집회 기사를 보도하면서 조중동은 전경차에 망치를 들고 있는 시위대의 사진을 내보내고 한겨레나 경향은 시위대에 소화기를 분사하는 전경의 사진을 내보낸다. 모두 시위에서 찍은 사진은 맞지만 다른쪽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을 감는다. 한쪽은 촛불 때문에 경제위기가 온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고 한쪽은 촛불을 계속 들어야 한다고 선동한다. 물론 사실 왜곡이나 주장의 당파성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것은 조중동 쪽이지만 한겨레 경향도 그동안의 보도태도에 비해 훨씬 당파적이라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판이다.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대립은 어떤가. 신문들은 인터넷이 ‘괴담 유포지’라고 폄하하지만 객관적 진실을 보도하기 보다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는 건 마찬가지다. 특히 조중동 등 보수지는 검.경의 수사와 국회의 입법기능, 방통위의 규제 등 모든 방법을 통해 뉴미디어의 영향력을 어떻게든 축소하고자 하는 정부의 움직임에 동조하는 기사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또 인터넷에서는 그 진의가 무엇이든간에 광우병이나 촛불과 관련해서 주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에 대해 테러에 가까운 매도와 악성 댓글이 몰아치는 ‘대중의 폭력’ 현상이 나타나면서 건전한 토론 문화의 장이 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의 대립은 사실 조중동과 MBC, KBS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와중에 현 정부가 YTN 등 방송국 사장으로 낙하산을 내려보내고 정연주 사장을 강제로 끌어내려 방송을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니 여론이 방송에 우호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방송의 의도된 연출이나 과장된 편집 등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분명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기사를 조금 과장되게 썼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유로 검찰이 PD수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은 명백한 언론 탄압이며 방송의 보도태도와는 별개로 비판받아야 할 사실이다)

오래 전 마치 야생 수달의 모습을 추적하는 것처럼 보도하면서 사실은 수달을 키우다시피 하고 연출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방송의 조작과 연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상당수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연출된 것이 많으며 TV 뉴스 프로그램에 곧잘 등장하는 ‘거리 시민 인터뷰’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 결과는? 보고도 못 믿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미디어 대전에 참가하는 거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신뢰를 얻기를 포기하고 장기적으로 독자(혹은 시청자)의 외면을 부를 것이 뻔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진흙탕 싸움의 최후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조중동? 한겨레.경향? 인터넷? 방송?

올드미디어에 종사하는 나지만 뉴미디어인 인터넷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조중동이든 한겨레.경향이든 각자의 노선에 동조하는 독자들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당파 저널리즘의 장점은 오히려 인터넷에서 활짝 꽃피우고 있다. 블로거들은 촛불집회 보도에서 현장성, 속보성 면에서 올드미디어를 능가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직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의 감성에 확실하게 다가섰다.

신문들이 건조한 기사체로 마치 공정한 보도를 하는 척하면서 사실상 당파 보도를 함으로써 역겨움을 불러 온 반면, 블로거들은 있는 그대로의 느낌과 분노를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공감을 얻었다. 즉 당파 저널리즘은 올드미디어의 경쟁력이 아니라 뉴미디어의 경쟁력인데 올드미디어가 경쟁적으로 당파 저널리즘에 참가함으로써 자충수를 두었다는 얘기다.

둘째, 당파 저널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도 올드미디어보다는 뉴미디어에 더 열려 있다. 올드미디어의 경우 기자의 소신보다 데스크의 의견, 편집국 전체, 회사 전체, 사주의 의도 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자기가 쓴 글을 부장이나 차장 등 데스크가 통째로 다시 쓰고 기자 이름만 붙인 채 승인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촛불집회에 직접 나가보니 전경들의 폭력이 시위대의 폭력보다 훨씬 심했다고 느꼈다 하더라도 조중동 기자가 이 같은 기사를 신문에 내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 사회 기사만 그런 게 아니다. 마이너 신문의 경우 광고주 눈치를 보느라 특정 기업에 우호적인 기사를 어쩔 수 없이 쓰거나 반대로 고발 기사를 쓰지 못하거나 삭제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이 인터넷에서도 ‘주류’의 생각에 반역하는 주장에 대해 단체로 공격을 하는 식의 전체주의적 폭력이 존재한다. 실제로 광우병 문제가 이슈가 된 후로 과학적 근거에 의해 광우병 위험이 적다는 의견을 표명한 한 의사는 네티즌의 집중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피카소님의 광우병 논란을 다룬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의지를 가진 분들은 분명 존재하기에 ‘대중’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는 점이 올드미디어와는 다르다.

편집국 전체에 대한 기자 한 명의 반란은 결국 기자의 사직 이외에는 답이 없지만 인터넷에서는 그렇지 않다. ‘집단지성’이라는 단어가 이런 저런 이유로 남용되고 있지만 인터넷 상에서 오류에 대한 수정을 통해 집단지성에 이르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것은 올드미디어가 갖지 못한 정말로 거대한 장점이다.

올드미디어가 뉴미디어의 싸움에서 최후의 패배자가 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신뢰’라는 전통적 가치를 붙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과거 정보독점 시대의 마음가짐으로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최신 정보를 습득하는 독자들을 우습게 보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마지막으로 신문기자로서 살아가는 데 회의를 느끼던 올해 초 희망을 주었던 책인 (새뮤얼 프리드먼 지음, 조우석 옮김, 미래인)의 몇몇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저널리스트란 누구인가? 내가 가슴 깊은 곳에서 품고 있는 저널리스트 상이란 무엇보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의 매듭에 서 있는 성실한 자세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정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철저하게 취재되고 정확성을 검증받아 생산된다. 개인적, 사회적 편견 혹은 당파성을 극력 배제한 것만이 좋은 기사다.

지적 호기심이 살아 있는 훌륭한 안목, 용기가 뒷받침된 취재와 탐사기획, 정확한 분석을 담보한 날렵하고 멋진 스타일의 글쓰기는 결코 낡아빠지거나 유행을 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미덕을 두루 갖춘 취재와 보도는 더욱 가치를 인정 받게 마련이다. 수요는 점점 느는데, 이를 채워줄 공급이 점점 줄어든다면 더더욱 그렇다.

젊은 예비 저널리스트인 당신에게 내가 요구하는 것은 세상에서 잠시 비껴선 채 오도카니 세상을 관찰하다가 인간적 취약점이나 들춰내고 냉소적 비판을 퍼부으라는 게 아니다. 내가 요청하는 도덕적 저널리즘은 진정 그 사회와 시대의 증언자 역할에 성실하라는 주문이다. 인간이 연출해 내는 위대한 성취의 순간을 함께하며, 사회 부패와 정치 부패에서 보이는, 즉 인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타락 앞에 용기 있게 입을 열라는 것이다.

1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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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노씨의 느낌…

    신문들이 건조한 기사체로 마치 공정한 보도를 하는 척하면서 사실상 당파 보도를 함으로써 역겨움을 불러 온 반면, 블로거들은 있는 그대로의 느낌과 분노를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공감을 …

  2. 주변부의 집단지성이 편견 투성이의 권력탑을 해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시로군요. 저도 그걸 바라지만 순탄치 만은 아닌 것도 사실이겠죠? :)

  3. foog님 소개로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기자시군요. 신문사 내부를 살짝 본 느낌…?

  4. [읽고 쓰기] 전면전 혹은 제한전… 조선일보의 선택은?…

    “풀뿌리”라는 것이… 원래 개인들의 자발적인 동참으로 생활에 밀접한 이슈에서 시작한다. 중앙의 집행부나 거대 집단의 지침이나 노선, 강령에 따라 행동하거나… 거대 담론에 따라 세부…

  5. [R/W] 변화/발전하는 포털과 정체/퇴보하는 신문… 미래의 여론선도자는?…

    [R/W][Read & Write][읽고 쓰기] 당연한 이야기 - 변화/발전하는 포털과 정체/퇴보하는 신문… 미래의 여론선도자는?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공자는 논어에서 학문을 하…

  6. foog님// 사실 단기적으로는 별로 낙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울한 모습이 더 많이 보이고 있거든요.. 하지만 장기적인 가능성 차원에서 더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G.O님// foog님 덕분에 블로그래픽이 소개됐군요. 트랙백 감사합니다. 신문사 내부는.. 좀 우울하지요.. (모든 직장이 그럴지도요) ^^;;

  7. 오랫동안 비판받아온 ‘기계적인 중립’은 여전히 ‘그런 척’하는 언론들이 유용하게 써먹는 수단인 것 같아요.
    그나저나 ‘옐로 저널리즘’의 유래는 처음 알았습니다. ^^

  8. 인터넷 매체에 희망이 있는 말을 현직 기자이신 펄님으로부터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납니다. 그 말의 진정성이 더 전해진다고 할까요. 며칠전 민노씨와 다큐멘터리가 갖는 ‘부풀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피디수첩이 분명 선정적인 목적을 갖고 오역을 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사회고발 다큐가 갖는 생태적 속성이란 것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요.
    마이클 무어의 연작 다큐가 100% 사실만 전한다고 할 수 없고, 실제로 그러기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펄님이 위에서 언급하신 길거리 인터뷰조차 ‘각본’에 맞는 목소리만 편집해 내보내는 점도 떠올려 본다면 더 그래요. 하지만 미디어가 힘을 가지려면 신뢰를 줘야 하는데, 점점 독자들은 눈이 날카로워만 가고..올드 미디어든, 인터넷 매체든 이점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을 거 같네요.

    덧) 마지막 인용해주신 책의 제목이 빠진 거 같네요. 궁금합니다. :)

  9. 퍼갑니다.. 다만 올드미디어가 살아나기 위한 방법이 ‘공정성’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듯. 이미 미디어대전은 갈데까지 간 상황, 과연 공정성을 무기로 하는 당파성 없는 언론이 발붙일 틈은 있는지 냉정하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10. 혹시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아닙니까? 그 책? 저도 한번 꼭 읽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꾸 까먹고 바쁘다는 핑계로 못읽었네요. 항상 시간 핑계 대는 사람 치고 잘되는 사람이 없다던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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