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인터넷, 인문학, 인간 : 짧은 대화의 기록

May 9th, 2009 | By 민노씨

- 아는 형과의 메신저상 대화에서 내가 이야기한 부분들을 발췌 및 편집(이어붙이기)한 잡문이다. 왠지 기록해두고 싶었다. 아마도 내가 메신저상 채팅을 꽤 싫어해서(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외적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링크는 추후 보충한 것이다.

* (무선 웹환경 도래 / 소형 무선 소통기기의 확산) 그렇게 되면 기존의 (유선) 웹을 중심으로 실험되던 행태들, 가령 블로그를 통한 새로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갖는 의미나 가능성.. 뭐 이런 것들이 무력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나 청소년들, 젊은 세대의 모바일기기를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들은 대부분은 수동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자극적이고, 표피적이며, 휘발적인 콘텐츠가 될 확률이 높아 보여서요. 물론 저는 그 반대의 가능성 역시 유보된 채로 남겨져 있다고 희망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이 대답은 언젠가 오프에서 새드개그맨과 나눴던 대화에서 새드개그맨이 강조한 입장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때는 새드개그맨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동시에 비판적으로 저항적이었는데… 아무튼 이 부분이 앞으로의 웹혁명의 실질적인 열쇠라는 점은 충분히 수긍할만한 입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에 트위터와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가 각광을 받는 것도 이런 모바일기기들과의 연계성 때문인 것 같아요. 저로선 가능성(사회적인 진보)의 차원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라는 기만적 표지에 의해 스스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주체 없이 일방적으로 유도되고, 자극되는 (객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암흑 시대를 이끌지 않을지 염려됩니다.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유도되는 우민화랄까요?

* 맞습니다. 특히나 일본은 그래서 유선 인터넷에서의 토론문화나 블로그문화에 대해선 오히려 취약점(?이렇게 표현하면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요)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아무튼 무선이라는 인터넷 환경의 변화가 그다지 민주화된 커뮤니케이션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만 같진 않아서요. 오히려 연성화되고, 표피적인 문화들의 구조화에 일조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없지 않고, 문화의 획일성을 가속화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나마 넷북 같은 좀더 큰 부피를 갖는 모바일기기들은 생산자로서의 웹 참여자들에게는 그 능동성을 담보할 수 있는 형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기기가 소형화될수록 앞으로도 당분간은 소비자들의 ‘피동성’을 강조하는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강조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그런 교육적인 방향의 가능성이나 대안적인 문화의 가능성도 생겨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상업화된 콘텐츠의 영향력이 이런 대안적이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문화적인 시도들을 압도할 것 같아서 말이죠… ;;; 님 기대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무선 웹을 통해서 생산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기 보다는 그저 피동적인 수동적 소비자로서의 여지가 커질 것 같아요. 그게 상업적인 이윤 확대에 기여할 가능성이 훨씬 높고요… 다만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대안적인 방법들을 모색해보는 일은 여전히 긴요하겠지만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만 해도 모바일기기들에 대한 적응력은 요즘 젊은 아해들보다 훨씬 뒤지고 있어서요..ㅡ.ㅡ;

* 쌍방향성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상업적으로’ 살아남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피상적인 것이 아닌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확보할 수 있는 진보적인 관점에서 살아남을 것인가가 문제겠고요.  아무래도 ‘교육’의 분야, 특히 외국어, 특히 영어의 분야는 아무래도 가장 상업적인 모델을 마련하기가 용이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워낙에 수요가 막대해서리… 이야기를 하다보니 역시나 약간은 전공에 대한 관심사로 이야기가 이어지는고만요. 저는 소리를 통한 블로깅의 가능성(팟캐스트)가 좀 커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역시나 이 영역은 그다지 장미빛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요. 역시나 대세는 영화와 쇼프로그램, 드라마와 같은 잘 빠진(?) 상업적 콘텐츠가 모바일 역시나 지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ㅡ.ㅡ;

* 저는 문화적인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그리고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갖는 진보적 의미 상품의 생산유통 모델들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것들에 조금이나마 이바지 하고 싶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뭔가가 떠오르지는 않지만요. 물론 그것은 무선인든 유선이든 웹을 바탕으로 하겠지요. 제 기술적인 지식이나 숙련도는 매우 낮습니다. ㅡ.ㅡ;;; 물론 기기의 조작 매뉴얼이 그렇게 크게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요. 아무튼 웹과 웹에 바탕한 콘텐츠 유통매개(기기)들은 정말 혁명적인 수준으로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바꿀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 가상현실이 현실을 압도하고, 현실을 거의 ‘무력화’시키는 미래상을 그린 영화들은 꽤 많죠. 버추얼 공간 속에서 사는거죠… 현실 속에서 사는게 아니라. 매트릭스는 그런 본질적인 표상에 대한 공포와 욕망을 블록버스터의 감수성으로 그리고 기계 vs. 인간의 대립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문제는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 vs 인간의 관점으로 환원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 인문학적 상상력은 고갈되는 그런 미래가 올 것 같기도 하고… 본질적으론 저 역시나 감각적인 쾌감이란 본능적인 유혹이 지적인 요구를 압도하는 것 같아서요… 저는 솔직히 그런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사회의 지성도랄까.. 그런 것은 오히려 반비례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총체적으론 인문학의 종말이 그런 기술로 인해 가능해질 것 같다랄까요.. 현재로서도 인문학은 거의 ‘죽은 학문’이거나 혹은 장식적인 가치만을 가진 영역으로 떨어져버린 것 같습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니 뭐니 이런 정책적인 홍보용 문구들은 여전하지만요… 특히나 대중문화의 차원에서 인문학적인 고민들이 점점 더 고갈되어간다는 건 솔직히 저와 같은 인문학적 향수(?)를 가진 사람에게는 꽤나 아쉬운 부분이죠.

* 그 환상이 스스로가 주체로서 만들어가는 환상인가, 아니면 상업적인 이익에 ‘유도되는’ 환상인가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실존에 대한 고민이 거세된 환상이란 그저 철저한 마스터베이션이 아닐까 싶습니당.. 형 말씀을 들어보면.. 물론 수긍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역시나 인간이 지금까지 인간을 규정하면서 성취했던 인문학적 성찰들은 좀더 생명력을 갖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그런데 이미 푸코 같은 이는 그 인간성이라는 가치(혹은 그의 표현의 빌자면 “인간이라는 발명품”)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잖아요. 저는 그게 무슨 허풍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거든요. 말씀처럼 특정한 형태의 소수자들의 저항은 남겠지만.. 인간의 지배적인 행위 유형들은 인문학적 공간이 소멸되는 삶을 맞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의문이 바로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실증적으로 탐구한 영역인데요. 푸코에 의한다면… 현재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그 ‘발명품’은 르네상스 이후의 담론적 구성에 불과할 뿐이지..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그 질문과 대답의 존립 근거 자체에 심대한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 그 영역에선 바이오 산업의 미래가 과연 인간을 행복의 낙원으로 이끌것인가… 이런 의문이 떠오르는데요. 저는 자본주의가 발전해오면서 그 자체로 정치권력의 숙주 역할을 하는 상업권력(’기업’)이 현실적으로 만들어낸 야만의 흔적들(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자원고갈이나 한쪽은 먹을게 넘쳐나서 다이어트 열풍에 빠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아사태가 발생하는)을 보면… 바이오 산업의 미래는 인간을 오히려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의 지옥으로 이끌 것 같습니다. ‘생물학적 차별이 자본력에 의해 벌어질 것 같다는 것이죠. 이 점은 점점 더 인간간 차별, 위계가 본질적인(물리적인) ‘바닥의 단계’(생물학적인 단계)로 내려간다는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회가 온다면… 과연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기존에 일말이나마 고민되어온 철학적 성찰, 존재론적 성찰은 ‘농담’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현재도 그런 성찰은 앞서 형께서도 동의하신 ‘장치적인 가치’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요.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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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트와 포털에 대한 낙서를 편집해서 올리러 왔다가 민노씨의 글을 발견했네요. 이 내용과 관련된 그림도 머리속엔 하나 그려놨습니다. ^^

    전 촛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시대에 대한 어떤 향수가 좀 있어요. 즉 전기가 없던 시절. 그런데 이건 벌써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요. 그밖에도 돌이킬 수 없는 게 참 많네요. 제가 살고 있는 곳도 점차적으로 문학과 철학을 얘기하고 그림을 그리고 무어가를 만들고 그런 걸 일상의 놀이의 의미로 나누는 문화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요. 서점은 옷가게가 되고, 갤러리는 화장품 가게가 되어가고 있고요. 텔레지전은 쇼와 미국 드라마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고요. 스타벅스와 맥도널드도 점점 늘어나고 있네요. 재래시장은 대형 마켓으로 바뀌는 추세고요.

    지금 태어나는 세대 정도면 세계화의 완성된 시점에서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개인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란 단순쇼킹해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하나로 연결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어주는 도구들도 여기에 한 몫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런 것,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사라져도 되는 시점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도 종종 하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 트위터 아이디는 nooe입니다.^^;

  2. 메신저 싫어하신다더니 메신저 있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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