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링크. No.6] 4월 다섯째 주 (2009.4.27.~5.2.)

May 7th, 2009 | By blographers


32. 블로거뉴스는 성역인가? (리승환)

http://www.realfactory.net/972
http://www.realfactory.net/trackback/972

민노씨 : 고재열은 ‘다음 블로거뉴스’에 대한 전략적인 편향(설마 다음 블로거뉴스의 편집상 장단점, 그 폐해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고)이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은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극소수 ‘다음 블로거뉴스 장학생’의 이슈를 ‘집단지성’이니 ‘추천’이니 하는 다소 포장적인(위장적인) 웹2.0 이슈로 끌고가는 점은 큰 아쉬움이다. 물론 고재열은 개편된 ‘다음 뷰’의 관점에서 그 기대감을 피력하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역시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의 ‘이기주의 버전’ 성격이 강한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리승환의 문제제기, 혹은 이견제기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재열의 글에 합리적인 의견이 없지 않으나, 큰 차원에서는 (자신의 트래픽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좀 민망뻘쭘한) ‘포털에 징징거리기’ 행태로 볼 여지가 강하다.

nooegoch:
블로거뉴스는 블로거의 공동묘지
네이버뉴스는 신문사의 공동묘지

33. 괄호 (ego+ing)

http://egoing.net/1076
http://egoing.net/trackback/1076

nooegoch: egoing(이고잉? 에고잉?)님의 블로그(blog)에는 ['좋은'(이와같이 사용된 해당 단어는 사실 거의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의미로] 딴지[이 말은 딴지일보( http://www.ddanzi.com/ 내 컴퓨터에서는 한글이 깨져서 읽을 수 없다)로부터 온 말일까?]를 걸고 싶은 글[post]이 참 많다. (참고글: 문장부호, ‘분명한 소통’을 위한 특수효과 http://blog.jinbo.net/bluejep/?pid=178 )

민노씨 : 재밌는 글이다. http://minoci.net/838 에 좀더.

34. 문제는 글을 쉽게 쓰는 것이 아니다 (이택광)

http://wallflower.egloos.com/1900195
http://wallflower.egloos.com/tb/1900195

nooegoch: 그렇다면 ‘친절’함의 문제일까? (참고: 친절하게 쓰면 뭐 어때서.. http://pariscom.info/274 ) 그런데 친절하고 말고는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쉽고 어렵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특히 윗 글과 관련된 이택광님의 글 <반지성주의에 대해(개정)> ( http://wallflower.egloos.com/1650995 )에 담긴 다음 문구는 정말 날카롭다.

“반지성주의는 ‘먹고사니즘’이라는 대한민국 유일의 이데올로기와 섭동하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과같은 문장은 나의 ‘비위’가 견뎌내지 못한다. (내용에 대해 이해는 해볼 수 있지만 이와같은 언어 사용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진중권처럼, 반지성주의가 목을 빼고 기다리는 그 대상, 그 ‘오브제 아’는 ‘없다’는 사실을 다이렉트로 폭로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지젝처럼 반지성주의가 끊임없이 들이대는 ‘오브제 아’의 논리를 교란시키면서 농담으로 만들어버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주체를 호명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똑똑한 친구에게 물어봤다가 아침 내내 꾸사리를 먹었다. 이 말을 내게 ‘친절’하게 설명해줄 친구가 필요하다.

민노씨 : 별다른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그러니 주제의식의 정밀한 전달이나, 논의의 논리인과적인 전개나, 인식의 깊이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장식적 수사에 대해 나는 대단히 비판적이다(이건 내가 그런 지적 속물근성에 여전히 갇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그렇다). 같은 혹은 비슷한 크기의 가치 전달을 위해 좀더 ‘쉬운 (우리말) 표현’이 있다면 당연히 그 표현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지식인이 가장 먼저, 가장 최후까지 고민해야 하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은 대중에게 군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중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지식인 vs. 대중’이라는 위계적인 설정을 둘 필요도 없이 그저 좀더 넓고, 깊게 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도구로써 지식은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무슨 자기과시를 위한 악세사리로 변질될 때 그것이야말로 ‘반지성’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에게 익숙한 ‘자기만의 스타일’과 ‘표현’을 획일적으로 정형화시키거나, 혹은 대중적 기호에 맞게 왜곡하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별다른 인식의 심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아리까리한 장식적 수사들, 특히나 지적 유행에 편승한, 적어도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그럴 확률이 높은, 무의미에 가까운 외국 학자들의 인용은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기억난다(블로그에서 분명히 읽었는데 어떤 곳에서 읽었는지 아쉽게도 기억이 안난다..;;;;;)

“쉬운 건 쉬우니까 당연히 쉽게 써야 하고, 어려운 건 어려우니까 쉽게 써야 한다.”

35. 논쟁

http://postmoderntimes.tistory.com/entry/%EB%85%BC%EC%9F%81
http://postmoderntimes.tistory.com/trackback/178

nooegoch: 34번 링크와 관련된 이야기. 그의 후일담을 통해 느끼는 바가 있었다.

“하고 픈 말은 그럭저럭 다 한 것 같은데, 논점을 완전히 제대로 잡고 논쟁을 하지도 못했고, 논리적으로 완전히 적합하게 논쟁을 끌어가지도 못했다. 가장 아쉬운 것은 내 스스로는 구체적인 그 어떤 것,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했음 에도 불구하고 논쟁 과정에서 다른 어떤 보편적인 ‘반지성주의’라는 것으로 환원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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