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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he Blographic &#187; 철학과 종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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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역사적 예수, 믿음의 또다른 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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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Jul 2008 15:31:28 +0000</pubDate>
		<dc:creator>가즈랑</dc:creator>
				<category><![CDATA[철학과 종교]]></category>
		<category><![CDATA[믿음]]></category>
		<category><![CDATA[역사적 예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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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한기총 vs SBS 다큐멘터리
얼마전에 SBS에서 방송을 했던 &#8216;신의 길, 인간의 길&#8216;이라는 종교 다큐멘터리가 화제다. 4회분으로 제작되었고 현재 2회분이 방송을 탔지만, 나머지 2회분은 한기총과 같은 기독교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있는 실정이다. 왜 예수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종교 다큐멘터리가 오히려 &#8216;예수를 믿는 이들&#8217;에 의해 환영받지 못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들여다보면 분명해진다. &#8216;신의 길,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attachment_158" class="wp-caption alignnone" style="width: 510px"><img class="size-full wp-image-158" title="jesus" src="http://blographic.net/wp-content/uploads/2008/07/jesus.png" alt="사진출처 : SBS 홈페이지" width="500" height="286" /><p class="wp-caption-text">사진출처 : SBS 홈페이지</p></div>
<p># 한기총 vs SBS 다큐멘터리<br />
얼마전에 SBS에서 방송을 했던 &#8216;<a href="http://tv.sbs.co.kr/religion/">신의 길, 인간의 길</a>&#8216;이라는 종교 다큐멘터리가 화제다. 4회분으로 제작되었고 현재 2회분이 방송을 탔지만, 나머지 2회분은 한기총과 같은 기독교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있는 실정이다. 왜 예수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종교 다큐멘터리가 오히려 &#8216;예수를 믿는 이들&#8217;에 의해 환영받지 못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들여다보면 분명해진다. &#8216;신의 길, 인간의 길&#8217; 다큐는 이제까지의 무조건적인 성서의 문자적 해석에서 한단계 내려와, &#8216;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8217;를 본격적으로(어쩌면 공중파에서는 처음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는 예수가 아닌가? 왜 그러한 논의 자체를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닫아버리고 있는걸까. 종교적 믿음과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는 동시에 할 수 없는 것일까. (이글에서는 종교간의 대화와 화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지만 그리스도교가 가진 타종교에 대한 이해는 생각보다 넓다. 문헌 <a href="http://www.cbck.or.kr/book/book_list.asp?p_code=K5140&amp;seq=401330&amp;page=2&amp;key=&amp;kword=">우리시대(Nostra Aetate)</a>에 타종교 이해에 대한 선언이 담겨 있다. via <a href="http://me2day.net/dalcrose/2007/05/31#01:23:23">dalcrose</a>의 me2day)</p>
<p># 신자의 고백<br />
태어날 때부터 신앙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많은 시간을 종교(천주교)의 테두리에 안에서 자랐고 또 그것이 내게 가르쳐준 삶에 대한 태도는 단순히 소중함 그 이상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는, 신자라면 한번쯤 해봄직한 의문들이 늘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정말 예수는 물 위를 걸었을까? 빵과 물고기로 5천명을 먹였을까? 정말 병자들을 치료하고 스스로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까? 등등 주로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능력에 관한 부분들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러한 기적을 의심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서가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인 &#8216;거짓말하지 말라&#8217;- 이 규율을 스스로 배반하는 일을 설마 신부님과 성서가 할까 싶었기 때문이었다.</p>
<p>이런 이유로 성서의 진정성에 대해서 의심의 영역으로 넘어서는 순간은 신자에겐 무척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완전무결성을 담보한다는 성서를, 만약 한 구절을 믿지 못하게 되면 전체의 이야기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성서가 자초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신자들 사이에서 털어놓는 것은 &#8216;낙인을 찍어주세요&#8217;라고 말하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었다. 성서의 모든 내용을 문자적으로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까지의 종교교육에 따른다면 말이다.</p>
<p># 역사적 예수<br />
&#8216;<a href="http://ko.wikipedia.org/wiki/%EC%97%AD%EC%82%AC%EC%A0%81_%EC%98%88%EC%88%98">역사적 예수</a>&#8216;는 <a href="http://nbbs3.sbs.co.kr/index.jsp?cmd=read&amp;code=tb_religion02&amp;no=1">기독교단체의 항의에 대한 SBS 제작진의 입장</a> 가운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직까지는 학계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던 이야기들이다. 역사가들이 역사 기록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선입견과 주관을 버리고 접근하듯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도 이같은 엄격한 고증의 잣대를 성서에 들이대고 있다. 또한 종교연구자들 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의 문화·생활사를 연구하는 이들까지 학제적 연구를 수행해 실재 존재했던 예수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려는 것이다.</p>
<p>연구 방향이 이렇다 보니, 역사적 예수에 관한 기술에는 &#8216;기적&#8217;이 등장하지 않는다. 신이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나자렛 예수,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겐 충격적이라 할 전복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8216;인간적 예수&#8217;만이 존재할 뿐이다. 또한 그를 위해 서술된 여러 복음서들의 기적들은 당시 구세주로 여겨졌던 예수의 신성한 탄생의 기원과 고귀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서술한다.(특히 <a href="http://en.wikipedia.org/wiki/John_Dominic_Crossan">John D.Crossan</a>의 입장) 따라서 연구 내용의 상당부분이 성서에 기록된 기적보다는 직접 말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화에 담긴 내용의 역동성과 가치에 주목한다. 따라서 성서를 비유적인 수사가 많이 담긴 문학적인 서술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적 예수연구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p>
<p># 대단히 종교적인 불신자(책의 목차에서 인용)</p>
<blockquote><p>나는 지극히 종교적인 불신자다. 이것은 다소 새로운 종류의 종교다. ··· 우리는 자연을 매우 불완전하게만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생각하는 인간이 겸손으로 채워야 하는 장엄한 구조다. 그것은 신비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진정으로 종교적인 감정이다.<br />
- &#8216;만들어진 신&#8217;(R.도킨스)에서 인용. 아인슈타인의 대화</p></blockquote>
<p>신적인 능력을 지닌 예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예수로 서술된 역사적 예수연구에 지지를 보낸다면 그는 종교인일까 불신자일까. 내세와 부활에 대한 내용에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 예수가 행한 신분계층에 따른 차별없이 사랑을 강조한 실천의 모습에 감동한다면..그를 종교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p>
<p>때때로 나는 종교인으로서 종교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사실을 알고 싶은 생각 사이에서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인간적 모습의 예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더욱 종교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인간이 된 거 같다. 성서에 나온 기적의 이야기를 사실이 아니라고 여기며 고민하기보다는, 이제는 그것들이 하나의 문학적 비유로 이해되면서 더 깊은 성서의 의미를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행했던 병 치료의 기적 또한 현대의 의학 개념에서 보는 &#8216;치료(cure)&#8217;가 아니라, 극빈층에서조차 소외받던 부류의 사람들을 한 밥상으로 끌어안은 공동체 차원의 &#8216;치유(healing)&#8217;에 가깝다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런 이해의 바탕에는 예수의 신성(divinity)에 대한 어느정도의 물러섬이 필요하기도 하다.</p>
<p>나는 예수가 곧 신(또는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신에 가까운 품성을 지녔기에 <strong>믿는다</strong>. 이때의 믿음은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믿음이라기보다는 그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온 보편적 진리가, 여전히 현대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또한 천국은 언젠가 하늘이 쪼개지고 천사들이 내려오늘 날 보이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곳이 &#8216;하늘나라&#8217;라는 인식이 절실하다는 믿음이다. 나는 역사적 예수를 보면서 믿음을 공고히 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예수가 말하려고 했던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언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또 그런 입장에 서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진지한 성격의 신자들이라고 보고 싶은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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