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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he Blographic &#187; 매체와 저널리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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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블로그로 그려가는 세상, 블로그래픽</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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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저널리즘의 미래, 암울하기만 할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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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Feb 2009 01:13:04 +0000</pubDate>
		<dc:creator>펄</dc:creator>
				<category><![CDATA[매체와 저널리즘]]></category>
		<category><![CDATA[이야기]]></category>
		<category><![CDATA[저널리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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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원 제목은 &#8220;저널리즘의 위기, 우울하게만 볼 것은 아니다&#8221;였는데, 바꿨습니다. 가볍게 쓴 글인데 혹시라도 제목을 보고 &#8220;저널리즘의 위기에 대한 무슨 해답이라도 나와 있나&#8221; 하고 들어왔다가 실망하실 분들이 계실지 몰라서요. 이 글은 &#8216;위기&#8217;, &#8216;답이 없다&#8217;, &#8216;시계제로&#8217;, 이런 말만 나오는 데 대한 단상을 적은 데 불과합니다. *
오랜만에 한RSS에 들어가니 그동안 쌓인 글이 너무 많아 도저히 읽을 엄두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원 제목은 &#8220;저널리즘의 위기, 우울하게만 볼 것은 아니다&#8221;였는데, 바꿨습니다. 가볍게 쓴 글인데 혹시라도 제목을 보고 &#8220;저널리즘의 위기에 대한 무슨 해답이라도 나와 있나&#8221; 하고 들어왔다가 실망하실 분들이 계실지 몰라서요. 이 글은 &#8216;위기&#8217;, &#8216;답이 없다&#8217;, &#8216;시계제로&#8217;, 이런 말만 나오는 데 대한 단상을 적은 데 불과합니다. *</p>
<p>오랜만에 한RSS에 들어가니 그동안 쌓인 글이 너무 많아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a href="http://www.google.com/reader/public/atom/user/12749721687351197950/state/com.google/starred">inthrerye님의 starred items</a>와 몇몇 블로거 글만 죽 훑어 봤는데, 저널리즘 특히 신문의 위기에 대해 적은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p>
<p>하나는 바하문트님이 쓴 <A href="http://bahamund.wordpress.com/2009/02/05/what-do-dailies-need-to-stay-float-and-possibly-walk-on-the-water/" target="_blank">What Do Dailies Need to Stay Afloat, (and possibly walk on the water)?</A> 란 다소 긴 제목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노정태님이 쓴 <A href="http://basil83.egloos.com/4837797" target="_blank">시대착오에 대하여</A> 라는 글이다. 둘 다 <A href="http://www.time.com/time/business/article/0,8599,1877191-1,00.html?iid=perma_share" target="_blank">월터 아이잭슨의 타임지 기고문</A>을 읽고 쓴 것 같다.</p>
<p>바하문트님의 글은 신문이나 잡지 등의 매체가 인터넷에 공짜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트렌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결국 이들 언론사들은 기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노정태님은 진정한 의미의 저널리즘 자체가 점차 죽어가고 있고, 특히 한국에서는 그런 것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허물어지고 있다며 한탄하고 있다. 초점은 다르지만 둘 다 저널리즘의 위기가 기사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려는 독자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데는 동의하는 것 같다. </p>
<p>오래 전, 신문이 세상을 보는 유일한 창이었을 때 (&#8217;호외&#8217;라는 것도 종종 찍었던 시절) 사람들은 단순히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하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신문을 돈 주고 구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공짜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특히 연합뉴스니 AP통신 같은 와이어 기사들이 포털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마당에) 신문 구독자들은 신문을 통해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정보나 분석력 있는 글을 읽으려는 이들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독자수가 줄어드는 마당에 광고까지 인터넷과 케이블TV 등으로 빼앗기면서 제작 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p>
<p>사실 나도 &#8216;사양산업 종사자&#8217;이다보니 한때 이런 현실에 좌절하고 &#8216;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 거 아닌가..&#8217; 하는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생각이 좀 바뀌었다. 신문 또는 저널리즘, 아니 콘텐츠 산업 전체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것은 외형(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내부구조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꿔 놓을 것이라는 약간은 막연한 추측에서다.</p>
<p>10년 후에는 신문 배급소라는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유통 방식이 나타날 수도 있다. 종이신문이 몽땅 없어질지도 모른다. 유통뿐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도 바뀔 것이다. 이미 음악이나 동영상은 인터넷 과금 시스템이 정착돼 가고 있고,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유통되는 저작물에 대해서는 저작자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도(할리우드 작가 파업의 결과처럼) 변화가 오고 있다. 저널리즘 특히 신문 쪽은 그중 가장 상황이 열악한 게 사실이지만, 이 분야에서도 창의력이 부족한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계 유수 신문사들이 머리 싸매고 수년 간 고민했는데도 아직까지 그럴 듯한 게 나오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존의 신문 발행 시스템을 일단 고수해야 하는 입장이고, 대안은 전혀 다른 곳에서 나올 수도 있다)</p>
<p>변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저널리즘에 대한 수요는 많은 적든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돌 그룹의 댄스곡이 1위라 하더라도 발라드나 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는 것처럼. 그걸 구현하는 건 신문 기사가 아니라 블로그 포스팅일 수도 있고 논픽션 저서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제3의 것일 수도 있다. 또 그러한 저널리즘이 기존 매체라는 &#8216;남&#8217;이 아니라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개인, &#8216;나&#8217;에 의해 구현될 수도 있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보내면 그러한 변화가 저절로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이 파업을 통해 변화한 세상에서 자기들의 권리를 찾았듯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p>
<p>뭐, 어쨌든,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건 아니라는 얘기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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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uot;알지 못하는 건 쓰지 말라&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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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1 Sep 2008 09:47:58 +0000</pubDate>
		<dc:creator>펄</dc:creator>
				<category><![CDATA[경제 전망대]]></category>
		<category><![CDATA[매체와 저널리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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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얼마 전 내가 속한 직장의 부서 전체가 경제계 원로 석학인 김종인 박사와 만나 &#8216;한 수 배우는&#8217; 기회를 가졌다. 1940년에 태어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사정권과 문민정부를 가리지 않고 경제정책을 자문했고 얼마 전까지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한 그분에 대해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으나 실제 대화를 해 보니 경제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은 물론 수십년 간의 경험을 통해 경제정책에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얼마 전 내가 속한 직장의 부서 전체가 경제계 원로 석학인 <a href="http://people.naver.com/DetailView.nhn?frompage=nx_people&amp;id=5308">김종인 박사</a>와 만나 &#8216;한 수 배우는&#8217; 기회를 가졌다. 1940년에 태어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사정권과 문민정부를 가리지 않고 경제정책을 자문했고 얼마 전까지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한 그분에 대해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으나 실제 대화를 해 보니 경제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은 물론 수십년 간의 경험을 통해 경제정책에 대해 매우 깊은 통찰력을 지니게 된 합리적인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강모 장관 등 전현직 경제관료들이 과거 사무관 시절 뭘 했는지까지 흥미진진한 화제의 연속이었다.</p>
<p>그런데 여러 가지 말씀 중 가장 와 닿았던 한 마디는 <strong><u>&quot;기자가 알지 못하면 쓰질 말아야지&quot;</u></strong>라는 말씀이었다. 경제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9월 위기설이니 무슨 대란이니 하는 식으로 위기를 조장하는 기사, 반대로 신문사의 특정 성향(현 정권에 친한가 적대적인가)에 맞춰 왜곡된 결론을 이끌어내는 기사 등등 언론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나 크다는 얘기다.</p>
<p>사실 요즘 신문을 읽다보면 아쉬울 때가 많다. 우선 이른바 &#8216;9월 위기론&#8217;은 &#8216;위기&#8217;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증폭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에 외화 채권 만기가 일시에 대규모로 도래하는데, 이 때 외국인들이 대거 상환해 가면 제2의 외환위기마저 도래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시나리오가 골자다. 하지만 현재 외채의 성격을 보면 외국 은행 지점들이 외국(미국 등)과 한국의 금리 차를 노리고 매입한 것들이나 조선업체들의 선물환 등으로 대대적인 만기 상환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터무니 없는 수준이다.</p>
<p>그러나 2MB 정부의 경제 실정이 계속되면서 국민들이 정책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상실되고 때맞춰 외국인들도 엄청난 속도로 &#8216;셀 코리아&#8217;에 나서 증시를 급락시키자 &#8216;정말로 9월 위기설이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8217;는 불안감이 고조됐고, 이 같은 심리는 9월의 첫 날인 오늘 외환시장과 증시를 패닉 상태로 몰아갔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이 9월 위기설이 말이 안 된다고 계속 얘기했지만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은 국민들은 그 같은 해명조차 믿지 않는 분위기다.</p>
<p>&#8216;국민연금 고갈론&#8217;로 언론의 단골 레퍼토리인데, 사실 국민연금은 애초부터 처음 일정기간은 적립을 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납입자의 돈으로 수혜자의 연금을 내는 형식으로 전환되도록 설계가 돼 있었다. 물론 고령화 저출산 시대의 도래에 따라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의 부담이 커질 것을 대비해 연금구조를 조정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언론에서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불안감만 조장하는 것은 국민연금을 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만 늘릴 뿐이다.</p>
<p>신문의 성향에 맞춰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를 쓰는 경우도 큰 문제다. OO경제, XX경제 등 경제 일간지들은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는 기사를 심심하면 쓴다. 조선일보도 <a h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21/2008082101998.html">기륭전자 관련 기사</a>를 통해 합세했다. 연간 이익만 200억씩 내던 회사가 겨우 최저임금을 받던 30여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는 사실은 아예 언급도 안 하고, &quot;노조가 &#8216;단식투쟁&#8217;을 하니 회사가 망하게 됐다&quot;는 식의, 도저히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기사를 썼다. 여기에 한 명의 &#8216;전문 노조꾼&#8217; 때문에 회사가 망하게 됐다는 식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해 내 놓았다.</p>
<p>사람들은 경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만큼 경제 기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용어의 남발이나 &#8216;위기&#8217; &#8216;불안&#8217;만 조장하는 기사, 속시원한 설명이나 대안 없이 문제점만 나열하는 기사는 이제 그만 쓸 때가 됐다. 독자들이 가장 원하는 쉽고 깨달음을 주는 분석 기사가 가장 필요하고, 그것이 속보 경쟁에서 이미 멀리 뒤쳐진 신문사가 추구해야 할 길이다.</p>
<p>문제는 극소수 신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신문사에서 그러한 분석기사를 쓸 수 있는 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이다. 소수 인원이 매일 여러 면을 메워야 하는 처지에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분석기사를 쓰기는 쉽지 않다. 1~2년이면 출입처가 바뀌기 때문에 전문기자를 육성하기 어려운 한국 언론사의 고질적인 문제도 여전하다. 나도 내가 쓴 기사를 자신있게 읽으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논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중요한 팩트라도 무시하고 그럴 듯하게 초를 치는 것을 당연시하는 보수언론의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고.</p>
<p>그렇다고 좀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층적인 기사를 쓸 수 있는 &#8216;주간지&#8217;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인력풀을 지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한국 주간지의 경영상황은 신문사보다 훨씬 열악해서 한 사람이 1주일에 쓰는 분량이 정말로 어마어마하다.</p>
<p>안타깝게도 아직은 인터넷에도 경제 쪽 전문가는 많지 않은 듯하다. 게시판에는 경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정도의 어이없는 음모론이나 괴담이 난무하고 블로거 중 경제 전문가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정년으로 교단이나 금융계를 떠난 경제 원로들이라든지 학계나 민간 연구소 등의 전문가들이 블로그를 시작해 좋은 글을 써 주면 어떨까. 봉사나 사회공헌의 차원에서라도 말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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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매체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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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Jul 2008 06:47:22 +0000</pubDate>
		<dc:creator>blographers</dc:creator>
				<category><![CDATA[매체와 저널리즘]]></category>
		<category><![CDATA[맥루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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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미국 3대 공중파 네트워크 방송(NBC, CBS, ABC) 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발명인 전기와 전신을 이뤄낸 세 개 회사의 이름이 나온다. 토마스 에디슨의 GE, 웨스팅하우스 전기, 그리고 AT &#38; T 이다. GE는 현재도 NBC를 소유하고 있고, 웨스팅하우스 전기는 CBS로 이름을 바꿨다. NBC에서 분리되어 나온 ABC는 월트 디즈니사에 의해 인수되었지만, 최근에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미국 3대 공중파 네트워크 방송(NBC, CBS, ABC) 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발명인 전기와 전신을 이뤄낸 세 개 회사의 이름이 나온다. 토마스 에디슨의 GE, 웨스팅하우스 전기, 그리고 AT &amp; T 이다. GE는 현재도 NBC를 소유하고 있고, 웨스팅하우스 전기는 CBS로 이름을 바꿨다. NBC에서 분리되어 나온 ABC는 월트 디즈니사에 의해 인수되었지만, 최근에는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가 최대 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전기와 전등, 통신,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발명했던 회사들이 텔레비전 방송 네트워크라는 가장 진화된 올드 미디어 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p>
<p>마샬 맥루한에 따르면, 전등은 하나의 매체지만 그 자체로는 메시지가 없다. 전등에 모양을 붙여 네온사인을 만들때 전등이라는 매체는 메시지가 된다. 전등에 글이나 그림을 입혔다는 것은 전등이라는 새 매체에 &#8216;글&#8217;이나 &#8216;그림&#8217;이라는 &#8216;컨텐츠&#8217;(contents)를 입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매체는 언제나 새매체의 &#8216;컨텐츠&#8217;가 되는 것이다. 또 매체의 연대기적 관점에서 볼 때, 텔레비전은 &#8216;영화&#8217;라는 올드 미디어를 컨텐츠로 태생했다. 물론 고대 희랍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8216;글쓰기&#8217;는 &#8216;말하기&#8217;와 &#8216;웅변&#8217;이라는 매체를 컨텐츠로 해서 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가장 오래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인 &#8216;말하기&#8217;역시 &#8216;생각&#8217;이라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nonverbal communication)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p>
<p>&#8216;매체가 곧 메시지다&#8217;라는 말은 종종 맥루한이 원래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8216;새로운 매체 자체가 곧 메시지&#8217;라는 의미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맥루한이 의도한 바는 올드 미디어를 &#8216;컨텐츠&#8217; 삼아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태동한 새매체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8216;말하기&#8217;라는 매체가 지배적이었을 때는 광장에서 목청높이던 웅변가들의 주장과 그 웅변을 들은 청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들이 메시지의 전부였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 기존 매체는 늘 새로운 매체에 대해 불평하고 견제하고 심지어 폄하했다. 1850년대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있던 은행가 제임스 로스차일드는  &#8216;전신이 설치된 것은 큰 수치이다&#8217;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전신으로 인해 누구나 뉴스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로스차일드의 은행업은 말을 타고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들을 이용해 유럽내 주요 교역장소에서 일어나는 비즈니스와 교역에 관한 뉴스를 통제함으로써 이윤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p>
<p>이처럼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형성된 새로운 매체는 인간들이 관계하고 행동하는 규모와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는다. 새로운 매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가능성을 열어놓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맥루한이 예로 든 것처럼 전등이라는 매체가 뇌수술에 사용되건 야구장의 야간경기를 밝히는데 사용되는가는 매체 생태학에서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새로운 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관계망은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p>
<p>따라서 맥루한이 &#8216;미디어는 메시지다&#8217;(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했을 때, 그 메시지라는 것은 새로운 매체가 열어놓은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토록 자주 인용되는 맥루한의 그 유명한 선언은 정확히는 &#8220;미디어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다&#8217;(the medium is socially the message)&#8221;라는 것이 &#8216;미디어 이해하기&#8217;의 비평판을 편집한 테렌스 고든의 해석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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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디어 대전,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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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Jul 2008 01:32:51 +0000</pubDate>
		<dc:creator>펄</dc:creator>
				<category><![CDATA[매체와 저널리즘]]></category>
		<category><![CDATA[지금은 블로그 시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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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미국 언론인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 매년 수많은 저널리스트들과 작가들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저서가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상을 제정한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조셉 퓰리처의 언론관은 사실 요즘 말하는 훌륭한 언론인상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1883년 퓰리처는 뉴욕의 조간신문 [뉴욕 월드]를 인수한 뒤 전단 제목이나 컬러 인쇄 등 (요즘 스포츠신문처럼) 화려한 편집기법을 사용하고 정치인의 부패.비리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미국 언론인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 매년 수많은 저널리스트들과 작가들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저서가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상을 제정한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조셉 퓰리처의 언론관은 사실 요즘 말하는 훌륭한 언론인상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p>
<p>1883년 퓰리처는 뉴욕의 조간신문 [뉴욕 월드]를 인수한 뒤 전단 제목이나 컬러 인쇄 등 (요즘 스포츠신문처럼) 화려한 편집기법을 사용하고 정치인의 부패.비리 고발기사, 선정적 보도를 늘리며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화, 스포츠 기사, 패션기사 등을 선보이는 등의 방법으로 부수를 늘려간다. 마침 1895년 광산재벌 겸 연방상원의원을 지낸 조지 허스트의 외아들 윌리엄 허스트가 [뉴욕 모닝 저널]을 인수하고 마찬가지의 선정성 경쟁을 벌이면서 두 신문 사이의 경쟁은 &#8216;옐로 저널리즘&#8217;이란 용어까지 만들어 낸다. ([월드]지에 인기리에 연재됐던 컬러 만화 [옐로키드]의 작가 리처드 F 아웃콜트를 [저널]지가 스카우트한 데서 붙은 명칭)</p>
<p>이 사건은 그러나 19세기 지지 정당의 찌라시 노릇을 했던 당파 저널리즘에서 공정한 보도원칙을 중요시하는 20세기 현대 저널리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신문의 고객을 특정 정파 지지자에서 대중으로 넓히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신문의 당파성이 건재하긴 했지만, 신문회사도 일종의 기업이다보니 경영전략 차원에서 보다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됐고 20세기로 넘어가면서부터는 극단적 당파성을 제거하는 전략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다. </p>
<p>결국 사설이나 칼럼 등 오피니언 면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면서도 일반 보도지면에서는 이를 배제하는 현대적 저널리즘이 확립된 것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닌 셈이다.</p>
<p>그런데 21세기 한국 언론 상황을 들여다 보면 마치 19세기 말 미국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미디어 간 전쟁이 너무나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고, 전선도  [월드]대 [저널]의 단순구도를 한층 벗어나 &#8216;조중동&#8217; 대 &#8216;한겨레경향&#8217;, &#8216;올드미디어&#8217; 대 &#8216;뉴미디어&#8217;, &#8216;신문&#8217; 대 &#8216;방송&#8217; 등 여러 구도로 형성됐다. 사설이나 칼럼과 구분이 안 되는 신문 1면, 입맛대로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고 연출 사진 논란에 상대방에 대한 낯뜨거운 비난까지, 지독한 전투 속에 현대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8216;신뢰&#8217;라는 단어는 완전히 실종됐다.</p>
<p>똑같은 촛불집회 기사를 보도하면서 조중동은 전경차에 망치를 들고 있는 시위대의 사진을 내보내고 한겨레나 경향은 시위대에 소화기를 분사하는 전경의 사진을 내보낸다. 모두 시위에서 찍은 사진은 맞지만 다른쪽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을 감는다. 한쪽은 촛불 때문에 경제위기가 온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고 한쪽은 촛불을 계속 들어야 한다고 선동한다. 물론 사실 왜곡이나 주장의 당파성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것은 조중동 쪽이지만 한겨레 경향도 그동안의 보도태도에 비해 훨씬 당파적이라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판이다.</p>
<p>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대립은 어떤가. 신문들은 인터넷이 &#8216;괴담 유포지&#8217;라고 폄하하지만 객관적 진실을 보도하기 보다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는 건 마찬가지다. 특히 조중동 등 보수지는 검.경의 수사와 국회의 입법기능, 방통위의 규제 등 모든 방법을 통해 뉴미디어의 영향력을 어떻게든 축소하고자 하는 정부의 움직임에 동조하는 기사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p>
<p>또 인터넷에서는 그 진의가 무엇이든간에 광우병이나 촛불과 관련해서 주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에 대해 테러에 가까운 매도와 악성 댓글이 몰아치는 &#8216;대중의 폭력&#8217; 현상이 나타나면서 건전한 토론 문화의 장이 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p>
<p>신문과 방송의 대립은 사실 조중동과 MBC, KBS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와중에 현 정부가 YTN 등 방송국 사장으로 낙하산을 내려보내고 정연주 사장을 강제로 끌어내려 방송을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니 여론이 방송에 우호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방송의 의도된 연출이나 과장된 편집 등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분명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8216;기사를 조금 과장되게 썼다&#8217;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유로 검찰이 PD수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은 명백한 언론 탄압이며 방송의 보도태도와는 별개로 비판받아야 할 사실이다)</p>
<p>오래 전 마치 야생 수달의 모습을 추적하는 것처럼 보도하면서 사실은 수달을 키우다시피 하고 연출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방송의 조작과 연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상당수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연출된 것이 많으며 TV 뉴스 프로그램에 곧잘 등장하는 &#8216;거리 시민 인터뷰&#8217;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 결과는? 보고도 못 믿는 것이다.</p>
<p>결과적으로 이 미디어 대전에 참가하는 거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신뢰를 얻기를 포기하고 장기적으로 독자(혹은 시청자)의 외면을 부를 것이 뻔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p>
<p>그럼 이 진흙탕 싸움의 최후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조중동? 한겨레.경향? 인터넷? 방송?</p>
<p>올드미디어에 종사하는 나지만 뉴미디어인 인터넷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조중동이든 한겨레.경향이든 각자의 노선에 동조하는 독자들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당파 저널리즘의 장점은 오히려 인터넷에서 활짝 꽃피우고 있다. 블로거들은 촛불집회 보도에서 현장성, 속보성 면에서 올드미디어를 능가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직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의 감성에 확실하게 다가섰다. </p>
<p>신문들이 건조한 기사체로 마치 공정한 보도를 하는 척하면서 사실상 당파 보도를 함으로써 역겨움을 불러 온 반면, 블로거들은 있는 그대로의 느낌과 분노를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공감을 얻었다. 즉 당파 저널리즘은 올드미디어의 경쟁력이 아니라 뉴미디어의 경쟁력인데 올드미디어가 경쟁적으로 당파 저널리즘에 참가함으로써 자충수를 두었다는 얘기다.</p>
<p>둘째, 당파 저널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8216;신뢰&#8217;를 회복할 수 있는 길도 올드미디어보다는 뉴미디어에 더 열려 있다. 올드미디어의 경우 기자의 소신보다 데스크의 의견, 편집국 전체, 회사 전체, 사주의 의도 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자기가 쓴 글을 부장이나 차장 등 데스크가 통째로 다시 쓰고 기자 이름만 붙인 채 승인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p>
<p>촛불집회에 직접 나가보니 전경들의 폭력이 시위대의 폭력보다 훨씬 심했다고 느꼈다 하더라도 조중동 기자가 이 같은 기사를 신문에 내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 사회 기사만 그런 게 아니다. 마이너 신문의 경우 광고주 눈치를 보느라 특정 기업에 우호적인 기사를 어쩔 수 없이 쓰거나 반대로 고발 기사를 쓰지 못하거나 삭제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p>
<p>물론 앞서 지적했듯이 인터넷에서도 &#8216;주류&#8217;의 생각에 반역하는 주장에 대해 단체로 공격을 하는 식의 전체주의적 폭력이 존재한다. 실제로 광우병 문제가 이슈가 된 후로 과학적 근거에 의해 광우병 위험이 적다는 의견을 표명한 한 의사는 네티즌의 집중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a href="http://gene.postech.ac.kr/bbs/zboard.php?id=note006&amp;page=1&amp;page_num=100&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mp;sn=off&amp;ss=off&amp;sc=on&amp;keyword=%B1%A4%BF%EC%BA%B4%C0%CC%BE%DF%B1%E2">피카소님의 광우병 논란</a>을 다룬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의지를 가진 분들은 분명 존재하기에 &#8216;대중&#8217;의 오류를 &#8216;수정&#8217;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는 점이 올드미디어와는 다르다. </p>
<p>편집국 전체에 대한 기자 한 명의 반란은 결국 기자의 사직 이외에는 답이 없지만 인터넷에서는 그렇지 않다. &#8216;집단지성&#8217;이라는 단어가 이런 저런 이유로 남용되고 있지만 인터넷 상에서 오류에 대한 수정을 통해 집단지성에 이르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것은 올드미디어가 갖지 못한 정말로 거대한 장점이다.</p>
<p>올드미디어가 뉴미디어의 싸움에서 최후의 패배자가 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8216;신뢰&#8217;라는 전통적 가치를 붙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과거 정보독점 시대의 마음가짐으로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최신 정보를 습득하는 독자들을 우습게 보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p>
<p>마지막으로 신문기자로서 살아가는 데 회의를 느끼던 올해 초 희망을 주었던 책인 (새뮤얼 프리드먼 지음, 조우석 옮김, 미래인)의 몇몇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p>
<blockquote><p>저널리스트란 누구인가? 내가 가슴 깊은 곳에서 품고 있는 저널리스트 상이란 무엇보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의 매듭에 서 있는 성실한 자세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정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철저하게 취재되고 정확성을 검증받아 생산된다. 개인적, 사회적 편견 혹은 당파성을 극력 배제한 것만이 좋은 기사다.</p></blockquote>
<blockquote><p>지적 호기심이 살아 있는 훌륭한 안목, 용기가 뒷받침된 취재와 탐사기획, 정확한 분석을 담보한 날렵하고 멋진 스타일의 글쓰기는 결코 낡아빠지거나 유행을 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미덕을 두루 갖춘 취재와 보도는 더욱 가치를 인정 받게 마련이다. 수요는 점점 느는데, 이를 채워줄 공급이 점점 줄어든다면 더더욱 그렇다.
</p></blockquote>
<blockquote><p>젊은 예비 저널리스트인 당신에게 내가 요구하는 것은 세상에서 잠시 비껴선 채 오도카니 세상을 관찰하다가 인간적 취약점이나 들춰내고 냉소적 비판을 퍼부으라는 게 아니다. 내가 요청하는 도덕적 저널리즘은 진정 그 사회와 시대의 증언자 역할에 성실하라는 주문이다. 인간이 연출해 내는 위대한 성취의 순간을 함께하며, 사회 부패와 정치 부패에서 보이는, 즉 인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타락 앞에 용기 있게 입을 열라는 것이다.</p></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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